집에서 할 일이 없어 지하철을 타보기로 했다.
뭐.. 아는 게 없어 그냥 타기만 해보고 돌아왔다.
먼 땅의 친구 하나 없는 환경은 무언가에 집중하기 좋은 시간을 제공했다. 첫 해외 경험을 기록하고자 구입한 중고 카메라에 집중했다. 몇 년 전 대학에서 수강한 필름카메라 수업을 되짚어가며 카메라의 기능을 하나씩 사용해보고 손에 익을 때까지 많이 찍었다.
핀치역에 가기 위해서는 5분에서 10분정도 걸어야 했는데 중간에 변전소와 녹지가 좀 있었다. 사람이 많이 다니지 않는 길이어서 사진 찍기 좋았다. 여러 구도를 실험히기 위해 누워 찍어도 흉볼 사람이 없었고, 늦은 저녁에 장노출로 찍는 실험을 하기에도 좋았다.
사실 여자친구가 수강 신청을 하길래 따라서 수강한 필름카메라 수업에 큰 관심이 없었다. 수업에서는 야외촬영과 스튜디오 촬영, 암실에서 사진 인화하기 등을 배웠던 걸로 기억한다. 그냥 따라하기 급급했던 기억인데, 막상 카메라를 들고 이리저리 다루다 보니 당시 교수님이 가르쳤던 내용이 새록새록 기억나서 신기했다.
수업시간에 여자친구 손만 잡고 있던 (카메라에 관심 없는)철없는 학생이었을텐데 몇 년이 지나서야 교수님께 가르침에 감사한다고 마음을 표현하고자 했으나 기회가 없었다. 오랜 시간이 지나서 그 교수님이 공주대학교 교수가 되었다는 소식을 듣기도 하고 친한 선배와 형동생하는 사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지만 감사한 마음이 10년도 더 된 후 인지라 따로 연락하지 않았다.
더 시간이 흘러 (재)한국공예디자인문화진흥원에서 근무할 때 심사위원으로 오셨다는 소식을 듣고 일부러 찾아가 인사를 했다. 친한 선배 이름을 들먹이며 내가 당신한테 카메라에 대한 가르침을 받은 사람 중 하나라고 너스레를 떨며 반가운 마음을 표현했다. 나름 일로 참석한 자리에서 갑자기 반가움을 표현하니 조금 당황스러웠을 수는 있었을 것 같다. 그래서인지 교수님께서는 크게 긍정한다거나 반가워하는 기색은 없었다. 때문에 너무나 개인적인 오래전 감사한 마음을 이야기 하기엔 머쓱하여 가벼운 악수만 하고 헤어졌다.
이 글을 쓰며 공주대학교 홈페이지에서 교수님 이름을 검색해본다. 가구리빙디자인학과 김건수 교수의 약력을 살펴보니 가구와 디자인 관련 경력과 실적이 화려한데 사진이나 카메라 관련 내용은 없다. 분명 엄청 잘 가르쳐 주셨던 기억이라 사진 및 카메라가 주업은 아니어도 연구실적이라도 있을 줄 알았는데 관련 내용이 없어 당황스럽다. 가구와 디자인이 주요 실적인 교수인데 사진과 카메라에도 조예가 깊다니, 몹시 매력적이다.
그 때 여자친구 손을 잡지 않고 수업에 조금 더 진심으로 임했더라면 나를 기억 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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