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취를 남기는 남자(해외)/'09 캐나다(토론토)

01. 토론토 가는 날

주는남자 2024. 6. 4. 20:40

  친가(親家)에 대한 느낌은 "데면데면"이 적당한 표현같다. 어릴때도 그랬고 지금도 크게 다르지 않다. 일년에 몇번 만나는 막내 작은아버지댁을 만날 때도 "데면데면"함을 벗어나지 않는다. 

 

  아버지는 삼형제의 첫째였다. 학창시절에는 동생들의 기강을 꽤 잡았던 것 같으나 사회에 진출한 뒤로는 직장생활을 하며 두 동생들을 뒷바라지 했다. 삼형제는 모두 약속이나 한 듯 슬하에 아들 하나 딸 하나를 두었다. 

 

  둘째 작은아버지는 할머니, 할아버지께서 돌아가시고 얼마 지나지 않아 캐나다로 이민을 가셨다. 아마 내가 중학생이었던 것으로 기억하니까 2000년도 전후였을 것으로 짐작한다. 

 

  이민 후 사촌동생들이 몇번 한국에 오기는 했으나 우리와는 식사만 하고 그들의 외가집에 머물다 돌아가곤 했다. 그들 또한 친가에 대한 "데면데면"한 느낌이 나와 같아서 친가쪽 사람들과 깊이 교류를 하지 않았을 거라 생각한다. 

 

  그런 작은아버지께서 집안의 장남을 캐나다로 보내란다. 내게 직접 이야기 한 것은 아니지만 작은아버지께서 부모님께 말하길 내가 캐나다에서 뿌리내리고 살 수 있도록 도와준다고 했다고 한다. 아버지께서는 항공권을 끊어주셨고 어머니께서는 "그래도 작은아버지가 네게 섭섭하게 하실 분은 아니니 잘 다녀와라"며 달러를 조금 쥐어주셨다. 

 

  그렇게 처음으로 바다를 건넜다. 벤쿠버에서 국내선으로 갈아타고 토론토에 도착하는 일정이었다. 벤쿠버 공항에서 무비자 입국이 최대 6개월까지 가능하다고 해서 체류기간으로 6개월을 적었더니, 출입국심사에서 따로 분류되어 자세한 질문이 오갔다. 나는 "마이 파더's 영거 브라더 리브스 인 토론토"를 연발했고 6개월의 체류기간을 확정받을 수 있었다.

 

  길어진 출입국심사 때문에 원래 탑승하기로 했던 국내선 항공기를 놓쳐 다음 비행기를 타고 토론토로 향했다. 작은아버지께서 픽업을 나오기로 했는데, 늦게 도착하게 되어 걱정이 되었다. 어쨌든 도착해서 짐을 찾고 밖으로 나가니 작은아버지께서 기다리고 계셨다. 늦는다고 연락하지도 못했는데 하염없이 기다려준 작은아버지께 감사했다. 

 

  늦은 밤 도착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작은아버지댁으로 도착하니 빈방을 내어주셨다. 

  그렇게 나의 캐나다 생활이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