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mories

02. 새벽닭과 합정리 이장님.

주는남자 2018. 9. 29. 21:32




  한국전통문화대학교 후문을 나서면 친근한 닭장을 볼 수 있었다.
  사실 후문을 지나 M마트, 여보게, 로데오 등을 가기 위해 항상 지나쳐야 하는 곳이다보니 항상 있는 닭장이 친근할 뿐 닭장 안에 있는 닭이 친근한 것은 아니었다.


  저 닭은 누가 키우는 것이었을까?

  닭장안의 닭은 바뀌었겠지만 내가 학교를 입학해서 졸업할 때까지 저 닭장의 닭은 비어본 적이 없었고 매일 동이 틀때면(간혹 동 트기 전에도)우렁찬 소리로 힘차게 울어댔다.


  우리학교 후문 안쪽으로는 가장 가까이는 야외농구장과 여자기숙사가 있었다. 여자기숙사를 지나 후문에서 비교적 떨어진 남자기숙사에 살던 나는 새벽닭 우는 소리를 들어본 적이 거의 없었지만 여자기숙사의 학우들은 매일아침 새벽닭 우는 소리에 잠을 설쳤다고 아우성이었다. 


  신기한 것은 새벽에는 닭이 운다는 자연의 섭리에 수긍이라도 한 듯 한 학기가 끝나갈 수록 새벽닭 우는 소리에 불평하는 학우들의 수는 줄어들었던 것 같다. (물론 방학을 보내고 난 후 불평은 다시 시작되었다.)


  기숙사의 평온한 아침을 방해하는 것은 저 무너져가는 닭장만은 아니었다. 기숙사의 단잠을 방해하는 절대적인 빌런은 역시 합정리 이장님이었다. 지금은 정확하게 기억이 나지 않지만 대략 새벽5시쯤이면 구수한 트롯트가 마을 곳곳에 있던 스피커에 울려퍼졌다. 그야말로 새벽을 깨우는 트롯트 소리.


  정확하게 1절이 끝나면 이장님은 그날의 용건을 길지 않게 말씀하시고 친절하게도 남은 2절을 후렴구까지 켜시고 방송을 마무리하셨다.


  언젠가 1박2일이라는 KBS TV프로그램에서 이장님과 비슷한 행위를 하는 것을 본 적 있다. 고단하게 야외 텐트에서 잠든 연예인들에게 갑자기 앰프를 크게 켜고 "뱀이다~ 뱀이다~ 몸에 좋고 맛도 좋은 뱀이다~" 라는 노래를 들려주어 단잠을 자고 있던 연예인들이 고통스러워하며 일어나는 것을 본 기억이 난다.  아마 우리학교 기숙사에서 담잠을 자다가 듣는 이장님의 아침방송의 충격은
"뱀이다~" 와 비슷했으리라.


  그 외에도 기숙사 학우들의 단잠을 깨우는 일은 한두개가 아니었지만 위의 두 사례처럼 기숙사 외부 요인으로 인해 잠을 깨우는 사례는 드물었다. 새벽닭과 합정리 이장님을 제외하면 늦은 새벽 기숙사의 베란다를 월담 하는 학우들의 월담소리 정도가 전부일 것이다. (사실 줄곧 3층에 살던 나는 12시가 넘어 기숙사 문을 닫으면 종종 스파이더맨 처럼 기숙사 베란다 족 외벽을 타고 3층까지 올라가는 경우가 있었지만 대부분은 1층 107호쯤의 베란다로 담을 넘어 기숙사로 들어가는 일이 잦았다. 107호쯤에 살고있던 학우에게 미안한 일이건만 그때는 뭐가 그리 당당하게 월담을 했는지.. 지금이라도 미안한 마음을 전하고 싶다.)


  급한 마무리로, 

  이 글을 107호쯤에 살고 있던 학우에게 바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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