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좌 생화, 우 무진 >
< 무진군이 잘 자고 있다. >
< 생화양이 두눈을 감고 입을 아주 약간 벌린 채로 잠들어있다. >
심찬이의 동생들이 태어났다.
심찬이 때와는 다르게 제왕절개를 했음에도 건강해 보이는 미진이에게 먼저 감사하고 별 탈없이 먹고, 자고, 싸는(?!?!) 두 아기들에게도 감사한다.
미진이와 두 아기를 병원에서 산후조리원으로 옮기기 위해 병원비를 정산하고자 수납처에 방문했다.
"어머, 쌍둥인데도 산모와 아기가 아주 건강한가봐요."
별도로 치료를 받은 것이 없어 수납할 금액이 많지 않다는 이야기를 돌려말하는 수납 담당자의 말이 매우 기분좋게 들렸다.
산후조리원에서도 별 탈없이 근심걱정 없이 살고있는 두 아기들에 비해 우리집 단톡방은 난리가 났다.
난리의 근원(?)은 바로 내가 야가(夜家)이기 때문인데 "야"가 주는 여러 이미지 덕에 이름 짓기가 아주 지랄맞기 때문이다.
아기들이 11월 3일에 태어났으니 그 때부터 단톡방에서 나온 이름을 내열해보자면...
야수, 야경, 야사무엘, 야가람, 야누리, 야마루, 야한울, 야주은, 야호, 야다, 야한나 등이 있다.
결혼 전, 미진이와 친구들이 합심하여 지은 이름이 셋 있었다. 첫번째가 야무진 이었고 두번째가 야심찬, 세번째가 야생화였다. 야심찬과 야생화는 각각 남자아기와 여자아기를 염두한 이름이었고 야무진은 성별과 상관 없는 중성적인 이름으로 생각해 두었다. 그 당시에 농담삼아 "애를 셋이나 갖는 것 아니야??"라는 농담을 했는데 그것이 현실이 될 줄이야-!!
첫째 아기가 남아인 것을 알았을 때 '심찬'과 '무진'사이에 많은 고민을 했다. 이름을 봐주신다는 어머니께 '심찬'과 '무진' 중에 골라달고 하며 내심 '무진'이 되었으면 했다. 태어난 일시와 한자어 풀이가 '심찬'이 좋겠다는 의견에 諶;참 심, 儧;모을 찬 으로 결정되었다.
미진이 뱃속에 있는 쌍둥이가 각각 남아, 여아인 것을 알게 된 후로 자연스럽게 남아는 무진, 여아는 생화로 불리게 되었다. 가족을 포함한 주변의 많은 지인들도 자연스럽게 두 쌍둥이를 무진이, 생화로 부르긴 했지만 주변의 모든 사람들이 두 아기의 이름을 직접 지어주어야 겠다는 굳은 다짐이라도 한 듯 감당치 못할 많은 이름들을 쏟아내었다.
물론 야무진, 야생화라는 이름이 머릿속에 박혀버려서일 수도 있겠지만 안타깝게도 무진, 생화 외에 마음에 드는 이름은 아직 없다. 그래서 두 아기의 이름을 남아는 야무진, 여아는 야생화로 정하고자 한다.
야무진, 야생화가 놀림받기 쉽기 때문에 안된다는 의견에는 야무진, 야생화가 문제가 아니라 야씨 성이 문제라는 말을 하고 싶다. 내 이름름이 무엇인가? 연합뉴스가 대법원 자료를 분석한 바에 따르면 '정훈'이라는 이름은 1970년대생 중에는 가장 많은 이름이었고 1980년대생 중에는 두 번째로 많은 이름이었다. 덕분에 고등학교때에는 같은 반에 나와 같은 이름을 가진 친구가 3명이나 있었다. 이렇게 흔한 이름을 가진 내가 언제 어디서나 심지어 군에서도 주목하는 이유는 엄밀히 따지자면 이름때문이 아니라 성씨 때문이었다.
야씨라는 성이 어느정도냐면..
바야흐로 군시절, 방공여단 소속의 흔한 중대에 여단장이 방문해 중대원을을 불러놓고 한 첫 마디가 "야정훈이 여기 있나? 내 군생활 중에 야씨는 처음봐-"였고 일년여가 지난 뒤 다시 방문해 이번에는 대대원을 불러놓고 한 첫 마디가 "야정훈이 아직 있나?"였다. 물론 나의 대답은 "이병! 야! 정! 훈!"에서 "상병! 야.정.훈!"으로 바뀌었지만.. 야씨는 그런 성씨이다...
언제 어디서나, 심지어 외국에서도 주목받는 야씨에게 놀림거리가 무서워 이름을 못짓는 것은... 뭔가 구데기가 무서워 장 못담는 것과 같은... 그런 느낌이다.
세상이 아기들을 있는 그대로 보아주었으면 한다. 이름도 있는 그대로 와닿았으면 한다. 사실 심찬이의 이름을 지을 당시부터 들었던 생각이긴 한데, 첫째 때에는 처음이라 경황도 없고 주변에서 한자이름이 당연히 있어야 한다고들 하니 잘 아시는 분께 적당한 한자를 구해 지었지만 사실 그리 달갑진 않았다. '야심찬'이라는 이름의 이면에 다른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심찬이를 부르는 사람들은 '야심찬'이라는 이름이 주는 그대로를 느끼고 기억해주길 원할 뿐 그 이상의 뜻을 갈구하고 싶지 않다. 이제 이름을 가져야 할 두 아기들에게도 마찬가지다. 무진과 생화라는 이름을 지어주고 싶다.
무진이는 '야무진'이 주는 느낌 그대로 사람들에게 기억되길 원하고 생화는 '야생화'의 느낌으로 기억되길 원한다. 두 남매를 부르는 사람들에게 야무진이 어떤 느낌인지, 야생화가 어떤 느낌인지까지는 중요하지 않다. 다만 '야무진'과 '야생화', 있는 그대로를 불러주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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