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파일인지는 알고 있었기 때문에 압축을 풀어 확인할 필요는 없었지만 나도 모르게 압축을 풀고 한참동안 각각의 파일을을 유심히 쳐다보았다.
지금의 한국전통문화대학교, 당시의 한국전통문화학교 후문을 나서면 위의 사진과 같은 대학가라고 하기엔 좀 뭣한, 대도시의 네온사인과 함께하는 대학생활을 꿈꾸던 학생이라면 절망할만한 풍경이 펼쳐졌다.
앞으로 난 길을 기준으로 오른쪽에는 보통 '정답게'라고 이야기하는 '정답게 이야기하는 집'이라는 식당과 학생들이 삼시세끼 학교 식당의 찐밥에 질려 입맛을 돋우고 싶을 때 자주 들리던 '전통가마솥'이라는 식당이 있었다. 그리고 오른쪽 길의 핵심은 역시 '미란네(라고 쓰고 'M'이라고 읽는)마트'가 아니었을까?
입학한지 얼마 안되었을 때의 일이다. 전통건축학과의 충세형님은 사실 나이가 많아 형님이라고 부르기에는 조금 조심스러운 면이 있는 적당히 불편한(?)형님이었는데 종종 M마트에서 막걸리를 마시곤 하셨다. 아마 점심식사 시간이 오기 전, 낮 11시쯤으로 기억한다. 그날 내가 왜 M마트 근처를 서성였는지 모르겠지만 충세형님은 지나가던 나를 불러세웠고 다짜고짜 막걸리 사발을 들이밀었다. 주는 술 마다않는 내가 쭉욱 들이키자, '어이쿠~ 이놈봐라?'하며 연거푸 세 사발을 따라주었다. 동네 어르신의 막걸리 심부름을 마치고 그 옆에서 주전자 뚜껑 한 사발 받아 마시던 기분이 이런 기분이었을까? 어느새 충세형님과 몇몇 OB(Old Boy; 스무살을 한참 넘겨 입학한 학우를 아울러 부르는 말)형님들과 함께 M마트에 자리를 잡고 앉아 이야기 꽃을 피우고 있었다.
M마트에서 특별히 제공한 미란네 김치와 500원에 파는 멸치 열댓개를 놓고 많이도 마셨다. 한참을 마시다가 천원짜리 몇개 주시며 다시 막걸리를 사오라는 충세형님. 막걸리를 계산하고 자연스레 흔들어 테이블에 올려놓으니, 충세형님의 불호령이 떨어진다. '감히 막걸리를 흔들어 가져오다니!!' 깜짝 놀라 다시 M마트에서 흔들지 않은 막걸리를 가져와 테이블 위에 올려두었다. 조금 시간이 더 흘렀을까? 내 잔이 비었는데 아무도 막걸리를 따라주지 않자, 옆에 있는 새 막걸리를 뜯어 내 잔에 따랐다.
"(쿵!!)이놈이!!"
적절한 힘이 들어간 충세형님의 꿀밤이 내 머리를 강타했다. 순간 나는 '자작이라는게 이렇게나 큰 잘못인가...' 라 생각하며
"왜때려요~!" 라 대들자
"어린노무시키가 가장 맑은 막걸리를 마셔? 그럼 맞아야지 임마-!"
그렇다. 나는 흔들지 않은 막걸리를 가져와 가장 밑에 있는 걸죽한 부분만 마셨던 것이다. 충세형님과 함께있는 OB형님들은 맑은 막걸리를 마시고 남은 걸죽한 부분만 따라줘도 넙죽넙죽 받아마시는 나를 살작 골탕먹이고 싶었던 것 같다. 왠만하면 설명해주지 않아도, 꿀밤 맞지 않고도 알법 한데 어쩜 그렇게 눈치가 없었을까? 애미애비도 못알아본다는 낮술, 거기에 막걸리의 가라앉은 부분만 마셔댔으니 해가 지기 전에 거나하게 취해버려 그 이후로 기억이 나지 않는다. (사실 취해서 기억이 안나는 것 보다는 오래되어서 기억이 안나는 것 같다.)
다시, 위 사진상 가운데 길을 중심으로 왼쪽에는 학교 반경 500m내 최고의 맛집 '대학촌', 아는 사람만 가는 '황산벌', 생강향 탕수육이 맛있었던 '상해반점', 그리고 호프집계의 양대 라이벌 '여보게 닭 잡으러 가세'와 '로데오'가 있었다.
지금은 없어진 공간 한국전통문화대학교의 후문.
[추억하는 남자]는 2012년 12월 20일 이전까지 충청남도 부여군 규암면 합정리 430번지 일대에 있었던 공간과 그에 얽인 이야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