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격] 살찌는 사람이 이유가 있다면, 살이 찌지 않는 사람도 이유가 있어
나는 엉덩이를 붙이고 있지 못한다. 집중해서 일을 할 때에도 집중은 하지만 자리에서 자주 일어나서 돌아다니는 편이다. 삶도 내 엉덩이를 닮았는지 삶터를 이리저리 옮겨다닌다. 이년 전쯤 새로 옮긴 직장의 사무실이 서울과 부산에 있다보니 서울에서 부산을 오가는 맛이 솔찬히 만족스러웠다. 그런 직장이 일년쯤 전, 서울과 부산의 사무실을 정리하고 통영으로 본사를 이전하니 은근히 즐기던 재미가 하나 없어진 기분이라 아쉽다.
부산에서 생활할 때 이야기다. 부산 남구에 자리잡은 사무실 주변은 재개발로 공실이 많은 편이었다. 자주 가던 맛집들도 하나둘씩 문을 닫았다. 점심때 자주 가던 함바집이 있기는 했으나 종종 별미를 찾아 차를 타고 멀지 않은 곳으로 나가기도 했다. 차를 타고 가는 곳 중 자주 가는 곳이 용호동이라는 동네였는데 경사가 많고 고만고만한 건물들이 밀집되어있는 부산스러운 풍경의 동네였다.
나는 부산의 돼지국밥과 밀면을 용호동에서 배웠다. 기억에 남은 과거의 첫번째 돼지국밥과 밀면의 기억이 생생하지만 인상적인 맛은 아니었다. 여행이 아닌, 부산사람과 부산의 사무실에서 함께하며 하루 중 잠시 쉬어가는 시간에 찐 부산 사나이들과 함께 맛보는 돼지국밥과 밀면은 귀한 점심시간의 만족도를 높여주기에 충분했다.
오늘은 밀면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다. 사실 부산에 있을 때도 밀면을 좋아하는 편은 아니었다. 살면서 밀면을 몇 번 먹어본 적이 없으니 평소에 먹고싶은 생각이 나지 않았다. 나는 천성이 먹는걸 좋아하고 가리는 것이 없어 사무실의 부산 사나이들이 먹으러 가자고 하면 따라가서 만두 한 접시와 물밀면을 주문하여 먹곤 했다.
우리 사무실에서는 용호동의 재성밀면이라는 밀면집을 고집했다. 맛에 일가견이 있는 회사의 부산 사나이들은 왠지 다른 밀면집은 거들떠 보지도 않았다. 오직 밀면집은 재성밀면만이 있는듯 이곳만 고집했다. 나는 워낙 밀면을 몇번 먹어본 적이 없던 터라 재성밀면이라는 곳이 맛이 있는지 없는지 알 수가 없었다.
재성밀면을 몇차례 가보니 부산과 경남 곳곳에 재성밀면 간판이 눈에 들어왔다. 우리가 가던 곳이 본점인듯 한데, 분점까지 있는 맛집이었다니 놀라울 따름이었다.
오늘은 통영시에서 오후 네시에 회의가 있었다. 꽤 민감한 주제의 회의여서 회의시간이 길어질 수도 있는 회의였는데 예상 외로 너무 빠르게 끝났다. 회사에 복귀하기엔 이른 시간, 부산사나이 한명과 함께 이른 퇴근을 한다. 차에 올라 거제 숙소로 가는 길, 저녁으로 어떤 음식이 좋을지 고민하며 숙소 근처 맛집을 검색해 보니 재성밀면 거제고현점이 눈의 띈다.
내가 먼저 밀면을 먹으러 가자고 하는 날이 있을 줄이야! 부산 사나이들의 평가처럼 재성밀면은 맛집이 맞는 것 같다. 재성밀면 거제고현점으로 향하는 길이 행복하다. 어떤 밀면을 먹을까? 물? 비빔? 물비빔? 만두는? 하나 주문해서 나눠먹을까? 오늘은 기분 좋으니 각자 만두 한판씩?
먹을 생각에 배가 더 고파진다. 오늘은 시원한 물밀면에 만두 한판씩은 먹어야겠는데? 라고 생각하고 있을 때 운전중인 부산사나이가 고민을 말한다. 고민을 찬찬히 들어보니, 마음같아서는 비빔밀면 한 그릇과 만두한판을 먹고 싶은데 비빔밀면은 좀 뻑뻑하고 고명이 물밀면보다 많은 것 같아서 만두 한판까지 먹을 수 있을지 고민이라는 것이었다.
충격이었다. 나는 살면서 국수의 고명의 양을 걱정해본 적이 없다. 냉면끈이 긴 편에 속하는 나는 수없이 많은 냉면을 먹었건만 냉면의 고명 양에 따른 전체 음식의 양을 고려해본 적이 없는데 비록 밀면이라곤 하나 고명의 양이 많은 것 같아 만두의 양을 걱정하다니, 역시 살이 찌는데는 이유가 있고 안찌는데도 이유가 있다.
잠시 고민에 빠진 부산사나이는 나를 보더니 이내 고민을 거뒀다. 재성밀면 거제고현점에 도착하여 부산사나이의 주도로 테이블마다 준비된 키오스크를 조작하여 주문을 마쳤다. 이내 물밀면과 비빔밀면, 찐만두 두 판과 튀김만두 한 접시가 나왔다. 오랜만에 먹는 밀면은 '밀면이 이렇게 맛있는 음식이었나? 만두와 궁합이 너무 좋은데?'의 맛이었다.
그래서 그걸 다 먹었냐고?
누가 얼마나 먹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음식을 남기지 않고 맛있게 먹었다는 것이 중요할 뿐.
오랜만에 먹는 물밀면은 시원했다.
이 맛에 밀면을 먹는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