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가 있는 남자

아는사람 배틀로 시작되는 이야기 - 시작

주는남자 2011. 1. 22. 14:47


 

얼마나 많은 이들이 월스트리트나 시티의 부자가 되려는 유혹에 빠졌는지 누가 알겠는가? 그런 사람이 단 한 명 있었다고 해도 세상은 이미 헤아릴 수 없을 만큼 가난해졌을지 모른다. -Joseph E. Stiglitz



 남자 애들끼리 모여있으면 꼭 '내가아는 누구가 어떻더라'경쟁이 있을 때가 있다. 예를 들면 '내가 아는 누구는 루이비똥을 들고 다니더라'라고 이야기하면 그 옆에서는 '내가아는 누구는 루이뷔똥 풀셋으로 차고다니더라',
'누구네 집에 가니 연필도 루이더라'류의 소위 '아는 사람 배틀(Battle)'인 것이다. 이 배틀은 돈, 집, 학력, 남성
・여성편력등 부터 누구네 집 개까지 자신이 아는(들은)모든 것들이 포함된다. 이 배틀은 마치 내가 나온 고등학교가 무슨대학을 얼마나 보냈고 내 옆자리 누가 수능만점이더라와 같이 나의 현재 상황과 능력과는 전혀 무관한, 이기거나 진다고 해서 얻거나 잃는 것 하나없다. 하지만 경쟁에 익숙한 우리는 항상 서로 이기려고 사돈의 팔촌 부모님의 형님의 친구의 후임의 대학후배... 까지 들먹이곤 한다. 학벌사회가 뿌리깊어서인지 학력배틀은 심심치 않게 등장하는 주제인데 학벌 배틀때면 나도 빠지지 않고 내놓는 인물이 있다.

 바로 큰 이모의 첫딸, 나에게 사촌누나인 은영누나다. 그 내용인 즉슨 공부를 허벌나게 잘해서 세계 유전공학계의 빠질 수 없는 인물이 되었다는 것이다. 사실 사촌 누나와 제대로 만나본 적 없다. 나이차도 많이나고 대학원을 나와선 바로 외국으로 나가살았기 때문이다. 최근 사촌누나는 독일에서 연구하고있는데 그 누나가 얼마전 잠시 한국에 왔다고 해서 만난 적이 있었다. 첫째 이모의 첫딸인지라 우리 외가쪽 이모 및 삼촌들에게서 절대적인 지지를 받는 누나의 입국은 모두 모일 만한 이유로 충분했다. 누나네 가족과 외가의 일곱 가족, 모두 여덟가족이 함께한 자리의 화두는 단연 누나네 첫딸 서연이었다. 우리엄마를 포함한 이모들과 삼촌들은 할머니 할아버지 되었다고 얼마나 좋아하시던지!! 자연히 이야기는 독일의 교육에 대해 이어졌다. 아이들의 하루는 5살아이를 그저 숲에서 놀게한다는 것이다. 몇시간을 숲에서 놀고 걷고 보고 느끼게 하니 음식투정 따위
할 새가 없어 잘먹고 아주 쑥쑥- 큰다는 이야기였다.

 누나가 들려준 이야기는 아주 간단한 것이었지만 내게 '당연한 것에 대한 새로움'을 느끼게 해주었다. 다섯살 아이가 잘 먹고 잘 논다는 말이 어찌나 새롭게 들리던지 '역시 선진 교육은 달라'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생각해 보면 지극히 당연한 것인데 말이다. 비록 다섯살 아이의 교육을 들었을 뿐이지만 내가 격어온 우리나라의 교육과 비교가 되었다. 우리나라의 교육열 이야기를 하자면 그만큼 진부할 수도 없을만큼 우리나라 교육에 관한 관심은 이미 오래전부터 극성이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실제로도 미취학아동부터 중고등학생의 사교육에 관한 이야기를 주변 사람들이나 각종 매체를 통해 접할 때면 아이를 둔 모두가 최선으로 자식 교육에 힘쓰는 것을 볼 수 있다. 

 과연 최선이 답일까? 나는 다음의 글을 읽고 '방향'의 중요성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했다.


 본인 또한 부모님의 경제력이 허락하는 안에서 최선의 교육을 받은 사람 중 하나로서 지금의 교육은 분명 제 2의월스트리트의 부자를 바라는 교육임에 분명하다. 이러한 최선의 교육은 대학에 와서도 변함없다. 바뀐것이 있다면 부모에 의한 것이 아니라 자발적으로 최선의 교육을 찾아 헤맨다는 차이일 뿐이다. 몸보다 더 큰 학원가방을 이고 다니는 아이들의 부모는 과연 자신의 아이가 볼로그 박사와 같은 삶을 살길 응원할까? 아님 은행권의 큰손이 되길응원할까? 본전을 생각해서라도 후자의 길에 들어서길 바랄 것이다. 하지만 일률적인 최선의 교육과는 다르게 삶에는 여러 방향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삶의 방향을 먼저 정하고 그에 맞게 최선을 다하는 것이 순서다. 하지만 모든 삶을 겪어보고 정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때문에 여러 방향의 삶을 살아가는 데 필요한 공통적이고 기본적인 것을 가르치는 것이 공교육이라 생각한다.

 언제부터 청소년들이 과소평가 된 것인지, 할 수 있는 것이라곤 공부밖에 없는 바보가 된것인지. 지금이 어느때인데! 내 나름대로 현 교육의 대안을 모색해 보겠다!